작성일 : 12-03-11 06:28
야고보서 5장 강해
 글쓴이 :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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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강해

5장은 본서의 결론으로서 5가지 권면을 독립적인 교훈으로 종결한다. 1-6절은 불의한 부자에 대하여 경고하고, 7-11절은 주의 재림을 소망하고 인내하므로 고난을 이기는 신앙을 권면한다. 12절은 맹세하는 것을 경고하고, 13-18절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위하여 믿음으로 중보기도 할 것을 권면한다. 끝으로 19-20절은 형제 사랑에 대하여 권면한다.

불의한 부자에 대한 경고 1-6
성도는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물질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된다. 하나님 앞에 불의한 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애통하므로 회개해야 한다. 2-6절은 네 가지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한다. 2-3절은 사욕으로 굶주린 형제를 돌보지 않은 것, 4절은 불의한 방법으로 물질을 모은 것, 5절은 자기를 위한 연락으로 방탕한 생활하는 것, 6절은 부의 권력으로 의인을 죽인 죄로 심판을 면하지 된다는 것을 경고한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물질이나 권세나 지식이나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부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부한 그것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취하고 보관하거나 나눠주고 사용하는 것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부한 것은 하나님의 복이다. 그러나 부한 그것을 자기 사욕으로 취하거나 보관하고 사용하는 것이 악하기 때문에 불의한 부자가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멀리 있지 않고 당장 현실에서 나타난다. 부한 것이 오래 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부한 그것으로 인하여 근심하게 되고 고생을 하게 된다. 울고 통곡해야 하는 것은 불의하게 가진 부를 인하여 자신의 악한 것을 애통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을 촉구한다. 회개하여 가진 부를 주신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형제를 사랑하므로 희생하는 부자는 더 부하게 될 수 있다. 불의한 부자는 보관 저축주의로 산 네 가지 면으로 회개해야 한다.
2-3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첫째, 부한 자는 가난한 형제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사욕을 회개해야 한다. 재물은 모든 물질을 대표한다. 자기에게 재산이 되는 물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당시에 부자의 재물은 곡식을 가리킨다. 창고에 있는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지 아니하므로 썩는 것이다. 옷은 좀을 먹고, 금과 은은 녹이 슬지 않는데 녹이 슬었으니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하늘에 쌓으면 좀이나 동록이 쓸지 않지만 땅에 쌓아두면 해를 볼 수밖에 없다(마 6:19-20).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다(마 6:19-23;). 이 녹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우리 살을 먹는다. 이 소중한 물질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증거 되며, 불같이 살을 먹는 것은 사용할 수 없는 물질로 인하여 살을 찢는 모양으로 자신에게 심한 고통이 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에 재물을 얼마나 많이 모아도 씨는 심고 양식은 먹는 것으로 구별하지 못하면 추수할 것이 없다(고후 9:6-12). 물질이 부요해도 그것이 자기에게 무익하다. 도리어 그 물질로 근심과 고통만 더하게 된다.
4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둘째, 불의한 부자는 불의하게 물질을 취한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불의한 부자가 부요하게 된 죄와 그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불의한 부자의 부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어야 할 삯을 주지 않고 착취한 죄악이다. 품꾼이 부르짖는 소리가 만군의 하나님에게 들리므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것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것은 그 죄악을 찾아 회개하고 가진 물질을 하나님 뜻대로 바로 사용하는 것이다.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셋째는 자기를 위하는 사치와 쾌락으로 방탕한 생활을 회개해야 한다. 성도의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속하신 그 목적은 다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대속하신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셨다(고후 5:15).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물질을 자기를 위하여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는 것은 자멸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짐승을 도살하기 전에 먹이를 많이 주어 살이 지게 하는 것과 같이 자기의 사욕을 더 크게 하는 것이다. 품꾼의 삯을 착취하는 것이 본죄라면, 자기의 마음을 살지게 하는 것은 원죄이다. 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6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넷째는 의인을 죽인 죄를 회개해야 한다. 불의한 부자가 의인을 부당하게 정죄하고 죽이는 것은 하나님과 상대하여 싸우는 미련한 행위이다. 의인을 정죄하여 법정에 고소하고 고발하며 죽이고 자기를 부요하게 하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을 대항해서 싸우는 행위가 되고 자기를 멸하는 어리석은 행위가 되고 만다. 그래도 아벨이 형을 미워하지 아니함과 같이 대항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 그는 의인이다. 상대에게 피동이 되면 똑같이 죄인이 된다. 의인을 죽이면 죄악의 세계가 된다. 그러나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부한 자는 부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거나 사용하는 것도, 취하거나 나눠주는 것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여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하면 부한 자가 복이 있다. 부한 자는 가난한 자에게 필요하다. 그 부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사람에게 덕을 세우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므로 구원하려고 필요한 것을 협조해서 나눠주며 희생한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인내하는 신앙 7-11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믿음으로 세상을 살면서 준비하는 삶을 산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천국 시민권을 받아 가졌기 때문이다(빌 3:20; 벧전 1:127). 세상은 죄와 마귀와 사망이 역사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이 없으면 주를 향한 소망과 믿음을 버렸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어떤 경우에서라도 정욕을 따라 다투지 않고, 형제를 비방하지 않고, 세상을 따라 속화되지 않으려고 하면 자기와 싸워 이겨야 하고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인내가 중요하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 이것을 세 가지로 권면한다.
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형제들이다. 형제는 주님을 사랑하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영생하는 하나님의 법이다. 부름을 받아 믿는 성도는 주님이 재림하여 오시는 날까지, 또 세상을 마치는 그 날까지 세상을 인내하는 믿음이라야 이기고 주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다. 그 이유 중에 첫째는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농부는 추수 때 얻는 곡식을 소망하고 땅에 씨를 뿌리고 거름을 하고 물을 주며 약을 치는 그 과정은 기다려야 한다. 냉해도 있고, 가뭄도 있고, 홍수도 있다. 비와 바람도 있다. 그래도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면 때가 되면 곡식을 얻는다. 이와 같이 성도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소망하고 주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여러 가지 형편에서라도 인내해야 한다.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이루시는 이는 오직 주님이시다. 성도는 인내하는 믿음으로 자기가 성화되고 영원한 소유를 얻으며 만물로 하여금 영원한 영광의 자유를 얻고 누린다. 이것을 주님이 재림하여 오시면 심판하고 영원을 보상하여 주신다. 성도는 농부와 같이 오래 참고 영원한 영광과 자유를 소망하고 어떤 고난이 있어도 인내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둘째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은 주 안에서 형제들이므로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원망하는 것은 주님 중심에서 자기중심의 정욕을 행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피로 구속을 받은 성도는 주님의 사랑을 알고 믿음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형제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죄가 되고 주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형제를 원망하지 않으려고 하면 주님을 사랑하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자기를 죽이고 부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이 인내다. 인내하는 신앙으로 형제를 사랑하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상을 받게 된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 무엇을 할지라도 심판하시는 주님이 문 밖에 서서보고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이 보지 않는 것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속이지 못한다.
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셋째는 선지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고난 중에도 형제를 원망하지 않고 오래 참았다(왕상 22:24-28). 인내해야 하는 셋째 원인은 선지자들을 따라 형제를 원망하지 아니하는 것을 본으로 삼아 오래 참으라는 것이다. 인내하는 자는 복이 있다(약 1:2-4; 마 5:11; 행 1:4-8).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현실에서 구속하여 주신 대속을 벗지 않고 입고 살려고 하면 고난이 있다. 그래도 그는 믿음으로 영감과 진리를 따라서 계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난이 있는 현실에서 참으로 믿는 믿음은 인내로 증거되고, 그 인내로 믿음의 온전함을 이루기 때문이다. 사도들도 예루살렘에서 인내하는 믿음으로 성령세례와 권능으로 예수님 증인이 되었다. 의인 욥도 환란 속에서 도리어 회개하고 인내하는 믿음으로 복을 받았다. 그는 겉으로는 고난을 받는 중에 하나님에 대하여 불평을 했다(욥 42:10-17).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믿음으로 고난 중에 인내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았다(욥 42:10). 그의 결말은 복이 되었다. 그런데 욥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욥이 고난을 인내로 승리하게 하신 사랑과 은혜로 복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현실에서 죄로 인하여 오는 고난이면 회개하므로 평안을 얻게 되고, 의를 행하므로 오는 고난이면 인내로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오히려 그것이 성화에 이르게 하고 복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기 때문이다.

맹세에 대한 경고 12
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무엇이든지 맹세하지 말라' 말씀을 했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 같은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신앙생활 해 나가는 데에 앞에 닥치는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현실을 살아나가는 데는 옳은 것과 그른 것, 하나님의 뜻이 '이것은 옳은 일이니 하라, 또 이것은 잘못된 일이니 하지 마라' 그렇게, 하라, 하지 말라 하는 두 말씀은 언제나 우리 현실에 놓여 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에 대해서 두 가지로 분별하면 된다. 주님이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 둘로만 구별하면 된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지, 하지 말라고 하시는지 두 가지로 구별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서 하라는 것을 하려고 힘을 쓰고, 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노력을 한다고 해서 우리 힘으로 안 할 수가 있으며, 또 하려고 힘을 쓴다고 해서 우리 힘으로 할 수가 있느냐? 그것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맹세는 단정을 짓는 것이므로 무엇이든지 '맹세하지 마라' 말씀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하겠다.' 또 '하지 않겠다.' 그렇게 절대성을 가지고 단정짓는 것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힘 있는 데까지 하는 것뿐이지, 우리 힘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가 하는 그 일에 동참해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믿음을 만드는 것뿐이다. 하나님에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못한다. 아무리 우리가 우리 힘에 '이런 것은 아주 시쁘니까 이것을 못 해' 하지마는 안 된다. 또 아무리 인간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닥치는 일은 무엇이든지 네가 하나님이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바로 깨닫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라 하는 것으로 깨달으면 그만 헛일이다. 또 하라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깨달아도 헛일이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인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이것은 하나님의 명문된 법칙을 근거하면 그 법칙대로 해야 될 일인지 그 법칙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구별하고, 뒤에는 우리에게 힘이 있는 대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안 하도록 노력을 하고, 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려고 노력하지마는, 결과적으로 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렸지 우리가 안 하려 한다고 안 해지는 것 아니고, 하려고 한다고 해지는 것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맹세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맹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것은 하라고 하시는가? 이것은 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그것을 살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것을 살펴서 바로 알려고 애를 쓰는 것이 우리 할 일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것을 알고 난 다음에는 우리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그것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내 힘을 다해서 했으면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충성이 되고 의가 된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금하시는 것은 안 하도록 노력하고, 명령하신 것은 하도록 노력을 하나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경영은 우리가 힘있는 대로 노력하지마는 결과를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12절에서 우리 단독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중보기도에 대한 권면 (13-18)
13-14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3절 이하에서 아무 것도 단독으로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해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실 수 있지, 그 법칙을 어기면 하나님은 같이 계시지 못하고 떠나신다.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법칙을 어겼을 때 우리는 당장 소멸이다.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면 하나님이 떠나지 않고 거기 계시면 하나님이 법칙대로 소멸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피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배워서 잊어버리지 말고 그 법도대로 해야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당한 현실에는 해야 할 것과 아니해야 될 것 두 가지로 구별하는 것이 첫째이다. 둘째는 해야 될 것은 하도록 힘써하고, 아니해야 될 것은 힘써 아니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힘 있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또 법을 어겼다. 경영은 사람이 해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우리에게 어려움을 당한 자가 있느냐? 그 어려움이 작은 어려움이든지 큰 어려움이든지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라 말씀한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어려움이라도 우리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주님이 해주시면 다 잘 해결된다.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이 작은 어려움이면 이것쯤은 하나님 앞에 기도 안 해도 내 힘으로 혼자 해결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그것이 죄다. 또 이렇게 작은 것은 하나님에게 기도를 조금 해도 주님이 들어 주실 것이다 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우리의 당한 현실에 작은 어려움이나 큰 어려움이나 고난은 똑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작은 어려움이나 큰 어려움이나 주님이 해주시면 되고 안 해주시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어려움을 당하든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이것은 주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이 사실을 믿고 주님에게 기도해야 된다. 우리는 무슨 어려움이든지 자기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 어려움 당하는 것을 주님 떠나서 사람과 의논하려 하지 말고, 주님과 의논하고 주님에게 간구해서 주님이 해 주시면 되는 것을 믿고 주님에게 간구해야 된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이 말씀을 믿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된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 어려움을 크고 작은 데 대해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고, 우리의 정신이 달라지고, 우리의 행동이 달라진. 그 어려움 당하는 것을 주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단일로 믿지 않는 것이 외식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려움 있는 것은 주님 한 분밖에는 이것을 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된다. 믿는 이것을 주님이 기뻐하신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우리에게 어떤 좋은 일이든지, 무슨 경제적으로 좋은 일이든지, 신체적으로 좋은 일이든지, 장래적으로 좋은 일이든지, 사건적으로 좋은 일이든지,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우리 몸 안과 밖에 모든 소유나 어디서든지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해 주신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찬송을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하는 행동이다. 무엇이든지 언제라도 잘된 것은 주님이 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그 사람은 하나가 되어 동행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적으로 은혜를 베푸실 때에 부모를 은혜 베푸는 기관으로 삼아서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나게 하실 때에 은혜 기관으로 '부모를 공경해라' 인인 관계에서 제일 첫 계명이 오계명이다. 은혜 기관에 대해서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라 교훈이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어떤 좋은 일이 생겼을지라도 그 일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사람이 주는 것 아닙니다. 사람 배후에 주님이 주시면서 그 사람을 사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모든 기쁜 것을 베푸신 이는 주님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된다. 주님이 기쁜 일을 베푸실 때에 기관으로 도구로 어머니가 이런 그릇을 사용하고 저런 그릇을 사용해서 주시는 것처럼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이런 사람을 사용하고 저런 물건을 사용해서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은혜 기관에게 '이것을 참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기의 상관에게 감사를 합니다, 자기 이웃에게 감사를 합니다, 부모에게 감사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죄를 짓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실 때 은혜의 도구로, 시은의 기관으로 썼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에게 감사가 되고, 그 다음에 은혜의 기관에 감사해야 한다. 그러면 이것이 바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이 말씀도 이대로 믿어야 된다. 이대로 우리가 믿을 때에 힘이 난다.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육신의 병도, 사업병도, 직장 병도, 모든 사건병도, 무슨 병이든지 병은 육신의 병을 말하는데 그런 복잡한 것을 하나의 진리로 깨달으면 그 이치는 백 군데 천 군데 다 맞다. 육신의 병이든 사업 병이든 병에 대한 이치는 하나이다. 그 사람이 공장을 건설했는데 공장이 병들었다. 그 사람이 지금 직장 취직이 안 돼서 직장이 병이 들었다. 그것이 다 한 가지 병이다.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병든 자가 있을 때 자기보다 신앙이 앞선 신앙 선배의 도움을 구하라 말씀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구역장이 알까 벌벌 떨고, 목사님 귀에 들어갈까 벌벌 떨고, 마귀끼리는 의논해도 자기에게 있는 어려움을 신앙 선배에게 의논하지 않으면 해결할 길이 없다. 신앙 선배는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저를 신앙 선배로 삼는 자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 아무리 애비가 사기꾼이라도 아들에게는 사기를 안 한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다.
'교회 장로를 청할 것이요', 무슨 일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보다 신앙이 앞선 신앙 선배에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신앙 선배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자기의 목자인 줄 알고 묻고 의논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하지 아니하고 악용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대로 두지 않는다. 하나님의 대리를 악용을 하면 하나님께서 분개해서 복수한다. 무슨 일이든지 신앙 선배에게 의논을 하시오. 의논하면 신앙 선배는 자기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에게 의논하는 것과 같이 의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유익이 되도록 해주신다.
장로로서 청함을 받은 자는 장로 직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해 주기만 하지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다. 하나님은 어떤 내용과 비밀을 알아도 우리에게 유익하게만 해주지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종으로 대우하고 어려움에 대한 해결을 구할 때 하나님의 대리자로 알고 하기 때문에 청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처럼 그에게 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된다. 그러므로 병든 자가 있으면 우리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간다.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기름 바른다는 것은 육신의 병든 데는 약을 사용하는데 주님의 이름으로 과학 문제부터 해결해 주는 것이다. 과학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하는데 주님의 것인 과학을 가지고 해결하는 것이 첫째 할 일이다. 모세는 얼마 후에 죽어서 가나안에 못 갔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한다.
그러기에 몸에 병든 사람이 있으면 주의 이름으로 만일 그 사람이 위생주의를 잘 못 했으면 주님은 네가 이렇게 살라고 했는데, 네가 육신의 위생을 잘 못해서 고장이 났다. 네 부주의로 났다. 지금 전염병이 돌아다니까 모든 의사도 주님이 냈고, 약도 주님이 냈고, 주님이 내 놓으신 약을 먹어서 주의 이름으로 그것을 먼저 해결해라. 그 다음에 기도해라. 이렇게 우리가 알고 해야 한다.
장사를 하다가 장사를 잘못해서 부도를 낫다. 부도낸 것을 신앙 선배에게 의논을 하면 신앙 선배가 돈은 없지마는 믿음으로 도와서 그 일에 대해서 협조를 해 줘야 된다. 협조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는 것은 주님의 것이라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체증약 하나 먹을 때에 '주님 이 약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약을 먹고 치료 잘되어 건강 얻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게 해 주옵소서' 이것이 주의 이름으로 약을 먹는 겁니다.
또 장사를 하다가 부도를 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주님이 법칙을 냈는데 네가 이 법칙을 어기지 아니했느냐? 이것이 비사회적이고, 이것이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 아니냐?'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다 과학이다. 다 물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위배되었으니 이렇게 회개를 해라. 부도난 금액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고, 채권자에게는 이렇게 해서 그것을 사회 과학, 경제 과학, 물리 과학,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과학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과학이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법칙으로 그 사람이 고쳐지고, 사상이 고쳐지고, 행위가 고쳐지고, 정신이 고쳐지는 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그 다음에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면 모든 물리에 맞도록  기도해라. 물리도 과학이고, 인간의 윤리도 과학이다. 이 사회법도 과학이고, 위생법도 과학이다. 거기에 맞도록 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해라. 주님이 주신 기름을 발라라. 똑똑히 주님의 것인 것을 인식을 시켜야 한다. 약을 쓸 때 주님의 이름으로 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 약은 주님의 것이 되지 않는다. 약을 창조한 이가 주님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 바르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
학교 공부하는 것도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면 인간 치료가 된다. 주님이 선생을 통해서 잘 가르쳐 주신다. 주님이 선생을 만들었고,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렇게 믿고 기도해야 한다.
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믿음으로 생명을 다하여 인내하는 기도이다. 믿음의 기도는 주님이 그것을 다 들어서 구원하여 주신다.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의 법칙대로 기도해야 되지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서 기도하면 헛일이다.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기도한 것은 그 기도한 대로 되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합당한 기도를 한 것이다. 엘리야가 너희는 너희 바알신에게 기도해라. 나는 우리 하나님에게 기도하겠다. 바알 신에게 기도해서 기도의 응답이 있고,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응답이 없으면 나를 너희 손으로 나를 죽이라. 만일 너희가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내가 기도할 때 응답이 있으면 너희를 내가 다 죽이겠다. 엘리야는 약속하고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엘리야가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자기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생명을 내놓을 만큼 믿음이 있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이다. 자기의 생명을 바꿔도 바꿀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그것이 믿음의 기도이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또 죄를 말씀한다. 어디서 죄가 나오는가? 기름을 바른 데서 죄가 나온다. 장로를 청하면 장로가 가서 그 사람에게 먼저 주의 이름으로 자연을 이용하여 과학적으로 해결하여 주어야 한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삐뚤어진 것이 차차 없어진다.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다 사하심을 얻으리라. 그 죄는 삐뚤어진 것이다. 그러면 온갖 삐뚤어진 것이 차차 차차 정리가 된다. 기독교는 미신의 도가 아니다. 기독교는 허영이 아니고 진실의 도다.
16절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여기 서로는 누구인? 죄를 서로 고하며 장로가 청함을 받았으면 그의 사업병, 그의 직장병, 그의 출세병, 그의 돈병, 고기덩어리병, 무슨 사고난 것, 거기 대해서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으면 그 잘못을 고해야 한다.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해야 다 해결 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성자 성녀가 의인이 아니고,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벗지 않은 자가 의인이다. 이제 벗고 있었으면 이 시간이라도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영생의 구속을 입으면 즉시 의인된다.
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엘리야 선지자의 행적에 본절의 기도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왕상 17-18장). 그러나 가뭄과 비에 대하여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심을 볼 때 이 말씀은 사실이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지만 그가 비오지 않기를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왔다. 왕상 18:1에는 삼 년으로 말씀한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서 6개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3년 동안 머문 것을 합하여 3년 6개월이 된다. 그러나 다시 기도할 때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게 되었다.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다하여 기도를 믿음으로 한 것이 틀림이 없다. 오늘 우리들도 어떤 형편에서라도 형편만 보고 따라가지 말고, 그 형편을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생명을 다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되 인내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형제 사랑에 대한 권면 19-20
19-20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고난 중에 있는 형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고 병든 자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다섯 번째로 진리를 떠난 형제를 사랑하고 구원하도록 권면한다. 초대교회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유대교로 회귀하거나 이단에 미혹을 받아 진리를 떠난 자가 많았다. 교회는 형제를 사랑하므로 고난 중에 있거나 병든 자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난 형제를 정죄하고 비방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므로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형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한 몸인 교회를 이루기 때문이다. 진리에서 떠난 형제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이 구속하신 주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믿음이다. 마귀의 미혹을 받아 넘어지고 삐뚤어진 길로 가는 죄인을 구원하여 진리로 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영원한 사망에서 영혼을 구원하며(신 30:19) 그의 많은 죄를 용서하는 것(잠 10:12)은 구원의 진리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는 주님이 하시는 섭리 역사에 피동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요일 3:16). 이러한 신앙행위는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마 25:40, 45).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그의 죄를 용서하고 그의 영혼을 구원하는 이것이 아니면 할 만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