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5-27 17:47
로마서 1장 강해
 글쓴이 : 호박
조회 : 4,115  
로마서 1장 강해                                   

제목: 하나님의 의
요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기 전에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하여 그 교리를 전하려고 기록한 것이다. 그때 로마교회는 소수의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였다. 이들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 예루살렘에 와서 복음을 듣고 회개한 성도들로 여겨진다(행 2:10; 28:15). 여기 성도들은 사도들에게 직접 교훈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유대인 중에 잘못된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록된 서신이 로마서이다.

1-7절은 문안 인사말을 하고,
8-17은 로마교회를 방문하는 이유, 믿음으로 얻는 구원, 하나님의 의, 복음의 능력을 말씀한다.
18-23은 이방인의 종교적 범죄를,
24-32절은 이방인의 도덕적 범죄를 말씀하면서 인간의 전적 타락을 말씀한다.

참고

1. 바울에 대하여
  1)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이고, 본명 사울은 ‘여호와께서 구하셨다’는 뜻이다(행 9:4).
  2)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빌 3:5).
  3)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했다(행 22:3).
  4) 바리새파 상류 가문 출신이다(행 23:6; 빌 3:6).
  5)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소유했다(행 22:26-28).
  6) 예루살렘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받았다(행 22:3).
  7) 천막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교회를 개척했다(행 18:1, 3).
  8)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빌 3:5).
  9) 독신으로 사도직을 감당했다(롬 1:1; 고전 9:5).
  10) 누이가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의 조카의 도움을 받았다(행 23:16).
  11) 육체의 가시로 고통을 받았다(고후 12:7).

2. 바울의 시대적 배경

바울의 활동 시기는 주후 34-68년이다. 이때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사도들로 비롯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까지 초대교회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교회 밖에는 사활로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믿는 성도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므로 이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그들을 핍박하게 되고, 황제 숭배를 거부한 기독자에 대한 로마제국의 핍박도 더욱 강하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유대주의자이었던 바울이 주를 만나고 회개하므로 이방인의 사도로서 유대인의 핍박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데 전력했다.

3. 바울의 생애
 
 1) 출생은 주후 1년으로 추정하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행 22:3), 스데반 처형에 협력(행 7:58; 8:1-3), 교회 핍박(행 8:3; 22:4), 그리스도인 체포 공문을 대제사장에게 요구 주후 34년(행 9:1, 2),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 음성을 듣고 주후 34년에 회심했다(행 9:3-8).

  2) 주후 34년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고(행 9:18), 다메섹과 아라비아에 복음을 전하고(행 9:22; 갈 1:7), 주후37년에 바나바의 보증으로 예루살렘에서 인정을 받고(행 9:26-28), 유대교인들의 핍박으로 다소에 피신하였다가(행 9:30; 11:25) 주후 44년에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1년 동안 동역했다(행 11:26).

  3) 1차 전도 여행은 주후 47-49년 바나바와 마가와 함께 했다(행 13:1-4). 안디옥, 구브로를 거쳐 소아시아 중남부에서 사역하고(행 13:5-14:28), 주후 49년 마가로 인하여 바나바와 다투었다(행 15:37, 38). 2차 전도 여행은 주후 49년 실라와 함께 했다(행 15:41). 주후 49-52년 드로아, 빌립보, 아덴, 고린도 등에서 사역했다(행 16:1-18:22). 주후 53-57년 3차 전도 여행은 아시아와 에베소를 중심으로 사역했다(행 18:23-21:14).

  4) 주후 58년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행 21:27-30), 가이샤라로 호송되고(행 23:12-33) 거시서 주후 59-60년 2년 동안 연금되었다(행 24:22, 23, 27). 주후 60-63년 로마로 호송되어 1차 연금되고(행 28:15-31), 주후 67년경 로마에서 2차 연금되었다가(딤후 4:6-8) 주후 67년경 순교했다.

바울의 사명과 인사 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편지를 쓸 때에 수신자에게 인사를 먼저 한다. 그러나 바울 시대는 편지 쓰는 사람을 먼저 소개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신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은 로마 시대에 가장 비천한 신분인 노예를 의미한다. 로마 사람들은 노예를 주인의 소유물로 인식했다. 노예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도구나 짐승처럼 사고팔고 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사람들의 종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한 것은 로마서를 깨닫고 우리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심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성령의 전이다(고전 6:19-20; 7:22-23). 주님의 것으로 살아야 주님의 종이 된다. 주님의 것은 주님의 계명을 지켜 주님 안의 있으면 주님이 내주하여 주신다. 내주하시는 주님이 영감과 진리로 역사하실 때 그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는 주님의 종이다. 주님의 종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 주인에게 속한 종은 주인만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주님의 피에 팔린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죽어도 주님만을 위하여 죽어야 한다(고후 5:15). 왜냐하면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이다(롬 14:8). 종은 주인의 소유로서 주인의 명령에만 순종해야 하고, 주인을 기쁘게 영화롭게 해야 한다. 바울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쳐 오직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아감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하나님에게 영광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바쳐 순종함으로 충성해야 한다. 주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의 피값으로 산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종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말씀에 전적 복종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어떤 피조물에게라도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전 7:23에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주님에게만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된다. 믿음에서 떠나 범죄하는 자는 그리스도 밖에서 자유하는 것 같으나 자유하지 못하고 방종하고 방탕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종이 되지 못하면 피조물의 종이 된다. 그러면 물욕, 정욕, 명예욕, 권세욕, 술과 더러운 취미욕, 더러운 버릇의 사람이 된다.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될 때는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의 종이다. 그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평강과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아 가지게 된다. 그때 우리는 영원한 영광과 대우와 존귀를 마련할 수 있다.


또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한다. 사도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중대한 사명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을 불러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중대한 사명을 맡기고 이방인에게로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했다. 사도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부르시고 예수님의 사활을 직접 목격함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된 자이다. 자칭 사도들이 있었으나 사도는 자신이 스스로 되고 싶다고 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세우거나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사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불러서 복음을 위하여 세우신 자이다. 구약시대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았다. 신약시대에도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직접 불러 세웠다. 성령의 은사와 권능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사도가 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종으로서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살고, 그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성령의 은사로 주신다. 우리는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서 복음을 위하여 여러 직분을 따라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다.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불러서 각각 자기의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무슨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다하여 충성해야 한다.


또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하실 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되고 예정되었다고 바울은 믿은 것이다. 바울 자신의 의지로 된 것도 아니고 부모나 스승의 의지로 된 것도 아니다. 그는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의 의지로 결정된 것을 믿고 자신을 소개한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특수한 사명을 맡기기 위하여 특별히 구별되었다는 것이다(엡 1:4,5; 갈 1:15,16).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택정함을 받았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워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그들에게 맡겨 파송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처음에는 복음을 위하여 이방 세계에 전파할 자로 택정함을 받았으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복음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그때 주님이 사울을 불러 바울 사도로 세우신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며 뜻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인식이 분명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하나님의 복음을 믿게 하시고, 또 그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도록 사도로 세우신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증인이 되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요 사랑이며 영광이다.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권면하면서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고 했다(딤후 4:5-8).


사도 바울은 그가 받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일평생 달음질을 하다가 주님께로 갈 수 있었다. 그는 사명감이 철저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다가 종으로 죽었다. 그는 복음을 들고 가서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다. 그 교회들을 위해 방문도 하고 편지도 했다. 그 편지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상고하고 있는 로마서이다.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받은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이 증거되도록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정하시고 부르셔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됩시다.

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종이며 사도인 바울은 창세전에 하나님 주권의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함을 입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믿고 증거했다. 세상을 사는 목적이 복음 전파이기 때문에 어떤 죽음이나 역경에도 문제시 하지 않았다.

2-4절은 하나님의 복음을 말씀한다. 바울은 복음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믿었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복음을 위하여 일생을 바쳐서 살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의미를 바로 깨달아 믿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εύαϒϓέλιον)이다. 복음은 복된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복음대로의 삶이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찾고 있다. 어두운 곳에 빛이 필요하고, 맛이 없고 썩어 가는 곳에 소금이 필요한 것처럼 이 시대는 이 복음이 필요하다. 말로만이 아니고 인격과 삶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믿는 데서 일어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약 60번이나 사용한다. 그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다(롬 1:1; 15:16; 고후 11:7; 살전 2:2, 8, 9). 복음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도 한다(고전 9:12; 고후 2:12; 갈 1:7; 살전 3:2; 롬 15:16,19). 하나님의 복음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복음(살후 1:9),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 1:11), 그의 아들의 복음(롬 1:9),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고후 4:4) 등으로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 또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의 복음(엡 1:13)이며, 평안의 복음(엡 6:15)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복음이란 죄와 마귀와 사망에게 종이 된 인간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기쁘고 복된 소식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활대속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이 어떻게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라고 2절에서 말씀한다. 이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그의 약속의 성취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속하신 것이다.

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아들”은 선지자들로 하여금 성경에 미리 약속한 하나님의 아들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실 뿐만 아니라 사활로 대속을 완성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이다.
“육신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세상에 오시므로 육신이 되셨다는 것이다(요 1:14). 죄가 없고 의로우신 예수님의 몸이 부패성이 되신 것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신을 부패성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 죄와 마귀와 사망 아래에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도성인신하신 것이다(롬 8:3). 하나님이 피조물 사람을 입고 나타나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희생이다.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이고 희생이다. 자기 백성의 죄를 인하여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육신을 입고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므로 자기 백성의 죄를 부담하도록 하셨다. 자기 백성의 죄에 대한 형벌을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므로 자기 백성이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아 행하므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다(롬 8:3, 4).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것은 육신대로의 혈통이 아니고 신앙 계통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택한 백성들의 왕권을 가지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만왕의 왕이 되어 오심을 말씀한다(막11:10; 요 18:36; 행 2:30). 신앙으로는 아브라함의 신앙 계통이고 권세로는 다윗 왕의 권세를 가지 예수 그리스도는 홀로 주권하고 주재하시는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것이다.

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참됨을 말씀한다. “성결의 영으로는”하는 말씀은 “육신으로는”과 대조적으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인성은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으나 그의 신성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을 증거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는’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완전히 이기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 것이 그 증거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거듭나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교회이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우리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가 되시고 머리로 역사하여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책임지고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보호하여 주신다.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그의 직명이다.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가지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통치하셔서 구원하여 주신다.

5-7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따라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우리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서 하나가 된 교회이다. 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부름을 받은 바울 자신이 사도로 택정함을 받았다고 하면서 4절과 5절에서 “우리”라고 말씀하는 것은 바울 자신을 포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교회를 두고 말씀한다. 주님의 교회가 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서 모든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는 사명을 받았다(행 9:15; 갈 2:8, 9).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의 호칭을 말하는 것 아니고 그의 인격과 공로를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인양성일위가 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뿐만 아니라 무덤 가운데서 영원히 부활하시므로 구속하여 주신 사랑과 희생을 가리켜서 이름이라고 한다. 그의 인격과 공로를 믿는 자는 그의 부름을 받아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는 믿는 자의 것이 되고,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 그러나 택함과 대속과 중생으로 믿는 자라도 그의 공로를 배반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대속으로 자기의 공로가 된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그의 것으로 구속받은 자 곧 주님의 종으로 살 수 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는 로마서의 수신자이다. 이 말씀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만 보내지는 서신이 아니다. 로마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신약시대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지는 말씀이다(벧전 2:9). 신약시대 모든 교회들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은혜와 복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따라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하심으로 택함을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으로 대속하여 주신 구속을 받아서 믿는 모든 성도들은 성령과 말씀으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받게 된다. 부름을 받아 믿는 자라도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구원은 받아도 건설적인 성화의 구원은 받지 못한다. 그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역사하지 못한다. 부름을 받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없는 것은 그가 믿음에서 떠나 그리스도 밖에서 살기 때문이다.

로마교회를 방문하는 이유와 믿음으로 얻는 구원 도리 1:8-17

1-17절은 로마서의 서론에 해당한다.
8-15절은 바울이 로마교회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한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동기는 로마교회에 복음의 도리를 전하려고 기도했지만 가는 길이 막혀 기회를 얻지 못해서 편지로써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신약교회에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16, 17절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구원 도리를 로마서의 주제로 말씀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전하시려고 하는 복음의 도리이다. 신인양성일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활로 대속하셨다. 이것을 믿는 자는 값없이 의롭다하시는 구원을 누구나 똑같이 얻게 된다. 이것이 기본구원이다. 이 기본구원을 동일하게 받은 우리는 각각 자기의 현실에서 믿음의 행위로 영광의 구원을 건설할 수 있다(행 15:11; 고전 3:16; 엡 2:21; 벧후 1:1). 1:18-15:13은 본론으로써 구원 도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 구속사의 전망, 구원을 얻은 자의 덕목들을 말씀한다.

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첫째는” 둘째를 말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을 강조해서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라고 말씀한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믿는 로마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온 세상에 그들의 믿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사활대속의 은혜이다. 이 은혜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 로마교회 성도뿐만 아니라 신약교회 믿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하나님께’하지 않고 “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는 것은 믿는 모든 사람들로 인하여 내가 섬기는 하나님에게 감사한다는 말씀이다. 바울의 신앙에 있어서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위주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중심위주이고, 셋째는 주님의 교회 중심위주이다. 이 개혁적인 믿음으로 로마교회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소망해서 바울이 편지한다. 바울이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그 원인은 사도나 다른 전도자들의 영향을 받지도 않았는데도 복음을 믿는 로마교회 성도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로마교회는 일반적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은혜를 받아서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9-10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가기를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님에게 직접 듣지 못했으나 바울은 사도들을 통하여 들었고 또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영감과 진리로 직접 받아서 섬기는 하나님이 감동하시므로 로마에 가도록 섭리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기도의 증인이 되셨다. 바울은 이미 개척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고전 1:4; 엡 1:16; 빌 1:3; 골 1:3; 살전 1:2; 살후 1:3; 딤후 1:3; 몬 1:3) 항상 쉬지 않고 로마교회에 갈 것을 두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로 갈 좋은 길 얻기를 그는 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었다(행 27:1-28:15). 이것은 주님이 인도하는 좁은 길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대로 응답하셔서 로마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11-13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심히 보기를 원한 열정은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은사이다. 이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다시 말하면 이 은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다. 바울은 이 구원의 복음을 나눠주어 그들이 믿음으로 주 안에서 하나가 되고 피차 평안과 위로를 얻게 하려 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형제들이다(롬 8:15). 바울이 여러 번 로마에 가기를 원한 것을 로마 성도들이 모르기를 원치 아니했다. 이것을 알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도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한 것이다. 이러한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으로 표현된다(롬 11:25; 고전 10:1; 살전 4:13).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한 것은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그들에게도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었다. 그 열매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구원을 얻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성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롬 3:24; 갈 2:16; 엡 4:13). 바울이 로마를 수평선으로 볼 수 있는 일루리곤까지 갔어도 로마에 가지 못한 것은 이미 개척한 교회들에게 사단으로 생겨진 문제들(살전 2:18)이며, 또 남아있는 선교문제이었다(롬 15:25-28). 이러한 열매를 맺기를 원했지만 지금까지 그 길이 막혔으니 너희들도 함께 기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14-15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말씀한다. 네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나 그 당시 헬라 문화권 아래 살고 있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말씀한다. 헬라인으로서 지혜있는 자나 그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두고 말씀하는 것은 유대인 외에 모든 이방인들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바울은 빚진 자라는 것이다. 무슨 빚을 졌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으로 지극히 큰 구원을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에 빚진 자로 말씀한다. 이 빚은 평생에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무한한 빚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구원의 복음 전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와 같이 거기서 오래 머룰 생각은 없었다. 로마에 가서 잠간 있다가 서바나로 갈 계획이었다(롬 15:23, 24). 그래서 미리 바울은 구체적인 구원의 복음을 편지로 써서 전했다.

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로마에 구원의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헬라 문화와 법과 철학을 자랑하는 로마 사람들에게 그 보다 복이 되고 구원이 되는 복음은 더 자랑할 수 있는 가치를 가졌기 때문에 담대히 전하고자 한 것이다. 오늘 믿는 우리에게 복음보다 더 자랑할 것이 있으면 복음 따라 믿지 못한다. 세상에 어떤 보배로운 것 보다 복음이 더 보배로운 것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보배가 질그릇 속에 담길 수 있다. 그 보배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복음이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구원에 이르게 한다. 복음은 믿음을 요구하며,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된다. 구원은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 얻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또 바울은 이것을 믿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복음을 먼저 받은 자는 유대인이고(롬 9:4, 5) 다음으로 받는 자는 이방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으로 나셨고, 사활로 대속하신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했다(행 1:8). 그래서 이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에게든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얻게 한다(롬 9-11장).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담겨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로 하여금 자기 백성이 구원에 이르도록 사활로 대속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근심이 해결되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소원이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근심은 불법, 불의, 불목, 영멸이다. 하나님의 소원은 사죄, 칭의, 화친의 새 생명, 영생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하신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택함과 예정과 창조와 도성인신과 사활대속이다. 그 본성은 죽으심으로 주신 대형의 사죄, 대행의 칭의, 대화친의 새 생명과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영감과 진리를 믿음으로 영생하는 것이다. 그 직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을 영원히 감당하는 것이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로 대속하여 주신 구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이다. 이 복음이 성경의 중심이며 로마서의 주제이다.

이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처음의 믿음은 기초적이고 종자적인 믿음으로써 하나님에게로부터 선물로 받은 믿음이다(엡 2:8).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때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주로 신앙고백하게 된다. 다음의 믿음은 성화에 이르게 하므로 건설적이고 성장적이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인데 기초적인 믿음과 건설적인 믿음으로 구별이 된다. 건설적인 믿음은 성도의 현실에서 성령이 가르치는 영감과 진리를 믿음으로 성화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서 영생한다(합 2:4).

의인은 누구인가? 첫째 아담의 자손은 다 죄인이다.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서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의인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법이 정죄할 죄가 없고 하나님의 율법을 다 순종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하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자가 이 구원을 누구든지 동일하게 받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이다.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은 기본구원을 받은 것이다. 기본구원 받은 것을 믿는 자는 믿음의 행위가 있어서 자신에게 성화가 건설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각각 자기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은 성령과 말씀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아야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한다.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신 선물이다. 건설적인 믿음은 의인이 현실에서 성령과 말씀을 따라서 회개하고 순종하는 믿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에 나아가는 것이다(히11:6).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활의 대속을 이루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형벌로 죽으시고 장사되심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풀린 증거는 예루살렘 휘장이 갈라진 것이고, 대행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증거는 그의 부활과 승천과 보좌에 앉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기뻐하심으로 완성된 하나님의 의를 믿는 의인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간다.

이러한 건설적인 믿음은 우리가 현실에서 회개로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것은 사죄받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고, 성령과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권능으로 우리와 동행하여 주신다. 이 사람은 하나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하나님 다음 모든 피조물 위의 본 지위를 찾아 가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사죄 받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믿음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방인의 종교적 죄 1:18-23

8-17절에서 구원의 복음과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고 오직 의인이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그 이유를 1:18-3:20에서 말씀한다. 인간이 타락하여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길 외에 없다. 유대인의 죄(롬 2:1-3:8)를 말씀하기 전에 이방인의 죄(18-32)를 말씀한다. 이방인이 우상을 섬긴 죄(18-23절)와 성적 타락(24-27절)과 완고함으로 지은 죄(28-32절)를 나타낸다. 하나님을 떠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 된 상태로 버려두는 유기(遺棄)이다(24, 28절).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고(롬 3:23) 그 죄의 값으로 사망하지만(롬 6:23)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롬 5:8; 6:4, 5) 하나님 공의에 만족을 이루고 인간을 구원하는 구주가 되신 것이다.

18-1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따라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18-32절은 이방인의 죄를 증거한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의에 대하여 동행하시며 구원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와 최후심판으로 나타난다. 불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죄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따라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의 불경건과 도덕적인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만물도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만물을 보아 알게 하셨다. 그래서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알 만한 지식이나 종교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만물로 저희에게 보여 알게 하셨기 때문에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진노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어떤 수양이나 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만 그 해결이 가능하다.

20-23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0절은 19절의 말씀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여 준다. 사람이 특별계시를 보지 않아도 자연계시를 보고도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 사람이 피조물을 보고 알게 하셨다. 피조물이 창조된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그 피조물이 하나님의 성품 곧 그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방인이라도 피조물을 보고 하나님과 그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연계시이다. 그러므로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아니한 피조물이 없다(요 1:3). 피조물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마땅히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도 않으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허망하여지고 미련하여지며 어두워져서 스스로는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나타내지 않고 죽고 썩어지는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고 만다. 그러니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이방인의 도덕적 죄 1:24-32

2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그러므로”는 18-23절의 말씀에 따라 결론적으로 말씀한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자연계시로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섬기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도리어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희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운 죄 가운데 버려두셨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으로 방탕한 가운데 살게 되었다(고전 6:9, 10; 엡 5:3). 이것은 하나님의 유기(遺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므로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닫고 성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거룩해야 한다(고전 3:16, 17; 6:15-17). 이방인들이 이렇게 타락한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리를 구원의 도리로 깨닫지 못하고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므로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로 하여금 영원히 찬송을 받으시기에 참되고 거짓이 없다.

26-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이방인들이 종교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므로 도덕적으로 성적 타락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은 24절에서는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셨으나 이제는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심으로 이방인들은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였다. 하나님을 떠나면 육체의 정욕대로 범죄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성욕으로 자신의 몸을 욕되게 하므로 자멸하게 된다. 순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행하는 것이고, 역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바꾸어 행하는 죄악이다. 그때 헬라 세계에 여인들은 순리를 역리로 행하여 동성애(homosex)를 즐겼고,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남자와 남자가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붙어서 동성애(sodomy)하므로 몸이 병드는 보응을 자신들이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성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역리로 행하여 자멸하게 된다. 이것을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고는 아무도 살 길이 없다.

28-31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또 이방인들은 마음에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이 없는 마음 곧 육체대로 내어 버려두시므로 하나님과 진리에 합당하지 못한 행동을 필연적으로 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법에 삐뚤어진 죄만 범하지 다른 길이 없다. 불의는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죄악이다. 추악은 다른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자기중심의 죄악이다. 탐욕은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더러운 욕심이다. 악의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전부는 피조물 중심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의이다. 유기된 자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서 자기중심으로 사는 죄악이 가득한 자이다. 또 시기는 남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존경하거나 칭찬하지 못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죄이다. 살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아니하므로 미워하고 시기하다가 죽이는 죄악이다.

분쟁은 서로 사랑하고 화평해야 하는데 서로 다투고 시기하며 투쟁하는 죄이다. 사기는 다른 사람을 속여서 자기 것으로 취하는 죄이다. 악독은 자기중심의 죄악으로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해하는 죄악이다. 하나님을 떠나므로 인간중심이 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해하는 죄악이 가득한 자가 된다. 이러한 죄악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모르게 비꼬며 악평하므로 수군수군하는 자가 된다. 또 사람들에게 들어내어 공개적으로 악평하므로 비방하는 자가 된다. 또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이기보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에 대하여 잔인한 마음을 가지고 고통당하는 것을 즐기는 능욕하는 자가 된다. 또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므로 자신이 하나님보다 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교만한 자가 된다. 또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는 미련한 자가 된다. 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피조물 중심으로 살아서 멸망하게 하므로 악을 도모하는 자가된다. 부모는 은혜의 기관이므로 모시고 공경해야 하는데 거역하므로 모든 은혜의 줄기를 단절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을 모르고 떠나서 삶으로 지혜가 없고 미련하여 우매한 자가되고,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배약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므로 사람에 대하여도 사랑하지 못하므로 무정한 자가 되고, 무자비한 자가 된다.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이와 같은 죄악을 행하므로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알고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사망하게 된다(롬 6:23).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보고도 하나님의 법을 범하면 죽고 망한다는 것이 순리이다. 저희들은 순리를 역리로 행하면서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일을 행하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옳다고 판단하고 옹호하는 것은 생명에 속한 자가 아니고 사망에 속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보지 않고도 자연계시를 보고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진리를 깨닫고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만물도 우리를 보고 심판한다. 만물도 썩어짐에 종노릇하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의 영광의 아들들에게 쓰임받기를 원한다(롬 8: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