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8-24 19:34
로마서 3장 강해
 글쓴이 :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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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강해

제목: 이신득의(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
요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1-8장은 기독교 구원의 원리를 말씀한다.
1:1-17은 인사말, 복음의 기원과 내용과 능력과 효과를 말씀한다.
1:18-3:20은 인간의 이신득의에 대한 절대 필요한 진리는 인간의 전적 타락(whole depravity)과 인간의 전적 무능(whole inability)과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다.
3:21-5:21은 이신득의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는 대표와 연합의 원리, 그리고 이신득의의 결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설명한다. 6-8장은 이신득의로 법적 칭의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하나님을 닮아 의롭게 되는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하여 죄와 전투, 죄에서 자유, 고난에서 인내, 하나님의 양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믿음을 교훈한다.
본장에서 1-20절은 1:18-3:20의 결론이다. 표면적 유대인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모든 인간의 전적 부패를 말씀한다. 또 21-31절은 모든 죄인에 대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다. 이것이 이신득의이다. 하나님의 택함과 중생으로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공로를 동일하게 구원 받은 것을 깨닫고 확신하는 믿음으로 그 은혜에 감사하고 믿는 일에 충성해야 한다. 믿음으로 충성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그 율법을 온전하게 한다(롬 1:16; 3:31). 믿지 아니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전적 타락한 인간에게 원인도 있지만 구원의 은혜를 거부하고 믿지 아니한 죄 때문이다.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원의 은혜를 믿는 자라도 믿음으로 순종하지 아니한 행위에 대한 심판은 지극히 공의로운 것이다. 이 심판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이다(고전 6:9-11; 갈 5:19-21; 계2:11; 21:8).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타당성 3:1-8
1:18-32은 이방인의 죄와 형벌을, 2장은 유대인의 죄를 말씀하고, 3:1-8은 유대인에게 대한 하나님 심판의 타당함을 말씀한다. 1-4절에서, 유대인은 이방인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므로 순종하는 유대인이면 복을 받게 되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이면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5-8절에서 유대인들의 두 가지 궤변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말씀한다. 5절에서 우리의 불의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면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공의롭지 못한 것 아닌가? 유대인들은 선을 나타내기 위하여 악을 더 행해야 한다고 한다(8절). 따라서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타당하다. 둘째 궤변은 7절에서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나타났으면 왜 죄인으로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이다. 이것은 자신의 불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뿐이다. 행함으로 그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 믿는 자에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역사해서 온전하게 하여 주신다(롬 1:16; 엡 1:19; 1:5).
1-4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과 율법을 받은 그 표시로 할례를 출생한지 8일 만에 행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이방인 보다 더 많이 받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면 무엇이 이방인 보다 나으며, 의롭게 행하려고 하는 이방인이 부도덕한 유대인보다 낫다면 유대인은 무엇이 이방인 보다 우월한가?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이면 그에게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것이 범사에 많은 유대인에게 무엇보다도 첫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다(롬 9:4, 5). 이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성경을 두고 말씀한다. 유대인이라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면 그 말씀이 정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어떻게 피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의 다수가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로 피할 수 없다. 일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계약대로 신실히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이 절대로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모든 사람은 거짓된 죄인이다(롬 3:10, 23; 시 116:11). 그러나 오직 하나님은 영원히 참되시고 신실하시다(시 100:5). 하나님은 완전하셔서 타로부터 판단을 받으실 수 없고 판단하시는 심판주이다(시 51:4; 요 3:33).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말씀의 의하여 만물로 하여금 영원히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 것이 만물심판에서 이기시는 그 증거이다.
5-6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3, 4절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믿지 아니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냄을 질문하고, 5-8절에서 그는 두 번이나 유대인의 궤변을 말씀한다. 처음 궤변은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면 하나님은 사람들의 불의를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므로 하나님도 불의하지 않느냐 하는 질문이다(롬 6:19). 의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불의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의 의를 허용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불의와 비교될 수 없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불의를 진노하고 심판하시므로 영원하고 완전한 의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들의 불의에 대하여 공의로우시다.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가 아니고 영원하고 완전한 공의의 확실한 증거이다(롬 1:18).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므로 결코 그럴 수 없다(창 18:25; 신 1:16, 17; 사 3:10, 11; 딤후 4:8). 만일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불의로 판단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할 수 없다. 죄와 마귀와 사망이 주장하는 세상을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히 공의로우시며 완전하시다.
7-8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
5, 6절에 이어 두 번째 7, 8절로 궤변을 말씀한다. 나의 거짓말은 바울 자신의 거짓말이 아니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적용하므로 더욱 생생하게 변론하는 것이다. 바울이 거짓말을 해도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불의한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거짓말을 하므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풍성하고 그에게 영광이 드러나더라도 사람의 거짓말이 허용될 수 없다. 하나님의 참되심으로 사람의 거짓됨이 드러나고 죄인으로 심판을 필연적으로 받게 된다. 사람의 거짓말이 허용된다고 하면 또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람은 악을 행하자 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선하심으로 선하지 아니한 것은 다 악하다. 선과 악은 대등하게 비교되는 관계가 아니고 적대관계이다. 창조주 하나님 중심위주로 선하지 아니하면 전부 피조물 중심위주로 악하다. 사람의 불의나 거짓말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참되심을 나타내고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사악함을 합리화하는 궤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구원의 복음을 훼방하여 자신들을 옹호하므로 저희들이 하나님에게 정죄되고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죄 아래에 있는 모든 인간 3:9-20
롬 1:18-3:8까지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9, 10절에서 결론적으로 선포한다. 11, 12절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마음과 생각의 죄(시 14:1-3)를, 13, 14절은 속이고 저주하는 언행의 죄(시 10:7; 140:3)를, 15-17절은 피를 흘리고 파멸하는 행위의 죄(사 59:7, 8)를, 18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한 죄(시 36:1)를 말씀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전적 타락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죄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안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19, 20절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죄악의 보편성에 대한 결론이며 이신득의의 서론이다. 율법의 한계를 말씀하고 율법으로는 의에 이르지 못하고 다만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고 의에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것뿐이다.
9-10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9절에서 두 개의 질문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면 ‘그러면 우리의 나은 것이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우리는 바울을 포함하는 유대인들인가? 아니면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인들인가?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유대인(롬 2:1-3:8)이나 헬라인(롬 1:18-32)이나 다 죄인이다. 이것을 이미 앞에서 말씀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의롭지 못하고 다 죄인이다. 첫째 아담의 자손은 누구든지 죄와 마귀와 사망 아래에 있다. 특수인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으로 세상에 오셨으나 그 밖에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의인은 하나도 없다(시 14:1-3; 53:1-3). 그래서 모든 사람은 전적 타락한 죄인이며 무능하다. 그러므로 아무도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정죄할 수 없다.
11-12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타락한 인간은 악하므로 죄인이고 의인이 아니다. 인간은 깨달음이 없어서 의인이 되지 못함도 아니고, 의인이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을 가질 수 없다. 또 의인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다. 깨달음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가운데 어떻게 행할 것을 진리로 알고 믿는 행위이다. 의인은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진리를 따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게 된다. 인간은 다 죄인이며 그 중심이 악하기 때문에 다 치우쳐 무익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시 13:3; 14:2, 3; 53:2, 3). 치우치는 것은 진리에서 벗어나서 좌로나 우로 벗어나는 행위이다. 타락한 인간은 중심이 악해서 다 치우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선은 하나님 중심과 위주이고, 악은 피조물 중심과 위주이다. 그래서 악한 인간은 전적으로 무지하고 무능한 죄인이다.
13-14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3절과 14절은 시 5:9과 10:7과 140:3을 인용하면서 타락한 사람의 언행 죄를 말씀한다. 그 죄는 마음과 생각에서 목구멍으로, 혀로, 입술로 나오는 죄가 그 입  안에 가득함을 말씀한다. 더러운 마음과 생각이 말로 나오는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암벽에 구멍을 뚫은 무덤 같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헐고 훼방하고 속이는 언행은 자기가 죽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임을 말씀한다(마 23:27, 28). 열린 무덤에 많은 사람들이 더나들 수 있는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계속하여 죽이는 악독이 가득한 말이 사람들의 목구멍에서 나온다. 마음과 생각을 조심하지 않으면 목구멍을 막을 수 없다. 또 그 혀로는 속임을 베푼다. 악독한 말로 아첨하는 것이 과거로부터 계속되고 있다. 만물보다 거짓된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는 악독이 목구멍으로 혀로 입술로 계속하여 나오는 독으로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망하게 하는 말이다. 사람에게 치명상을 주는 헌담과 저주는 독사의 독과 같다. 그래서 악인의 입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 의인의 말은 사람을 살리고 복이 되게 하지만 악인의 말은 사람을 살해하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 사람은 말로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다(약 3:2).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제어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몸과 행동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다(약 1:2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서 진리대로 언행심사 하도록 해야 한다.
15-17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5-17절은 피를 흘리고 파멸하는 행위의 죄악을 말씀한다(사 59:7, 8). 마음과 사상의 죄악이 살해하는 행위의 죄로 나타나는 이것이 사람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연고이다. 사람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미워하므로 살해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 전부가 파멸과 고생의 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진리를 떠나서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 가기 때문에 모든 것이 파괴되고 곤란과 고난이 따르는 것이 필연적이다(신 28:14).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걸음을 걸어야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고 생명과 평강으로 역사하여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생명과 평강은 창조하신 만물의 자연적인 상태로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가는 것이다. 사람이 타락으로 부패한 악성을 따라 죄를 범하는 걸음에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른다. 자기의 주관과 사욕으로 행할 때를 만족하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멸하는 것을 오히려 자기의 승리로 알기 때문에 자신을 멸하는 파멸과 고생의 길이 되고 만다.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마음과 생각이 악하여 속이고 저주하는 언행과 살해하는 행위로 하나님을 떠나 정욕대로 행하는 죄악의 걸음이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시 36:1).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밖에 없다(시 36:1).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우리가 위의 10-18절의 말씀을 아는 대로 누구에게든지 율법이 말하는 바는 좁은 의미로는 모세오경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신구약성경 전부를 말한다. 그러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모세오경을 받은 유대인들을 말하는가? 아니면 신구약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가? 아니면 유대인과 이방인 곧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모든 사람들을 말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따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율법을 받은 사람은 율법대로 심판을 받게 되고, 율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에 새긴 율법 곧 양심을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다. 그것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게 될 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19절은 이러한 죄악의 보편성에 대한 결론이면서 이신득의에 대한 서론이다. “그러므로”하는 말씀은 ‘율법이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다’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율법과 양심이 정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시 143:2; 갈 2:16; 3:11). 타락한 사람은 원죄와 본죄로 악성과 악습이 있어서 아무리 많은 의를 행한다고 해도 완전히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의 율법을 범해도 죄인이 된다. 그래서 인생은 육체가 되었다. 사람이 지음을 받을 때는 깨끗한 심신이었지만 타락한 이후부터 악성과 악습을 가졌기 때문에 육체가 된 것이다(창 6:3).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과 사활대속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 외에는 그 길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힘입어 사죄를 받았기 때문에 지은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에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지은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죄를 깨달아 알고 회개하므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게 하는 거울과 같고 지팡이와 같다.

이신득의 3:21-31
1:17-3:20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대로 행하여 의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율법이라도 행하지 못하면 죄인이 된다. 그래서 의인은 예수님 외에 아무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주신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새 법(롬 1:17; 3:21)을 세 가지로 말씀한다.
21-26절은 이신득의에 대한 도리를 설명한다. 율법 외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의 곧 복음을 제시하고(21a절), 이 복음은 역사적 전통성(21b절)과 만인에게 주어지는 보편성(22절)과 이 도리가 나와야 하는 이유(23절)와 칭의(24절)를 말씀한다. 하나님의 의를 사람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이 이신득의이다(25, 26절)이다.
27-31절은 이신득의의 도리와 관련한 부연 설명이다. 이 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다(27, 28).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과 같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도 보편적이다(29, 30절). 이신득의는 율법의 한계를 극복하여 율법을 더욱 완전하게 한다(31절).
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제는”의 의미는 시간의 전후를 말하지 않고 도리의 대전환을 말씀한다.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율법으로 정죄를 받아 죄인이 된 것을 말씀하고(롬 1:18-3:20), 이후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을 말씀한다(롬 3:21-5:21). 하나님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말씀한다. 그런데 사람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켜 행하지 못하므로 죄인이 되므로 율법은 자신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한다. 율법에서 하나라도 범하면 그 사람은 죄인이 되지마는 의인이 되는 것은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 그래서 의인은 하나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이다. 이 하나님의 의를 문서로 계시하여 준 것이 복음이다(롬 1:17).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도 있었으나 그가 세상에 오시므로 더욱 분명하게 되었다(22절, 롬 4장; 딤전 3:16; 벧전 1:20; 요일 3:5, 8).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과 달리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도리로서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자의 뜻을 완전히 지켜 행함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법이다(마 5:17; 7:12). 하나님의 근심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공로가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믿음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근심이 되는 진노 곧 불법과 불의와 불목과 영멸을 대형(代刑)으로 사죄를 이루었고, 하나님 율법의 요구와 명령에 대행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여 칭의를 이루었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화친하여 새 생명을 이루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죽었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지 않았으면 그의 죽으심으로 이룬 공로는 영생이 되지 못하므로 헛되다(벧전 1:3-7).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중생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영감과 진리대로 믿고 순종하므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감당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를 건설하게 되었다(엡 2:11-22).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곧 하나님의 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에게는 차별이 없다. 그들이 믿는 믿음도 차별이 없다(벧후 1:1). 중생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얻은 구원도 동일하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동일하게 율법을 범하므로 죄인이 된 것(롬 1:18-3:20)과 같이 동일하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다(딤후 3:15).
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려면 그 전제 조건이 죄인이 되어야 한다. 죄인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성인신 하여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고 사활로 대속할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므로 죄인이다(롬 1:18-3:20; 5:12). 첫째 아담의 자손이면 누구든지 원죄와 본죄로 죄인이다(엡 2:1).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과의 행위계약을 범하므로 그 자손이면 어떤 민족이든지 전부 죄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려져야 하는데 그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이다(엡 1:4-6, 12, 14). 모든 사람의 타락으로 죄인이 된 것은 하나님에게 도리어 근심과 수치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은혜로 무죄자가 되고,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영생하게 되었다. 중생해서 믿는 자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이 구원을 동일하게 받은 자가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것이다(요 1:12; 딤후 3:15). 하나님의 근심과 수치는 불법과 불의와 불목과 불신이다. 이는 하나의 죄에 네 가지 면을 말씀한다. 이 죄의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받으시고 값을 내시므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된데서 해방하여 자유하게 하셨다. 이것이 대형의 사죄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순종을 죽기까지 하시므로 대행의 칭의를 이루셨다. 죄를 멸하고 의를 이루시려고 예수께서 화목의 제물이 되시므로 하나님과 원수관계를 화친관계로 새롭게 한 것이 대화친의 새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공로를 베푸셨으나 부활하지 않으면 그 공로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우리를 무죄자로, 의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영생하도록 하기 위하여 영원히 피조물을 입고 부활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랑이며 희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사랑과 희생이나 부활하심의 사랑과 희생이 똑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은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하고 하나님에게 영원히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근심과 수치를 완전히 해결하고 하나님의 소원과 기쁨을 온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 공로는 중생해서 믿는 우리에게 값없이 동일하게 주어지 은혜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항상 감사하고 이 의를 입고 살아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동행하여 주신고 구원에 이르도록 역사하여 주신다(계3:4, 5).
2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5-26절은 24절을 다시 해석하여 준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신인양성일위로 세상에 보내시고 사활로 대속하게 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 구원을 얻게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대표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구속하신 사활대속은 하나님의 진노(불법, 불의, 불목, 영멸)을 대형으로 사죄하고, 하나님 율법의 요구와 명령을 대행하여 칭의를 완성하시므로 하나님과 피조물 관계를 새 생명으로 화친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들이 영원히 하나님을 소망하고 믿게 하셔서 영생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성취한 하나님의 의이다. 그는 보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대형해서 자기 백성을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완전히 해방하고 자유하게 하셨다. 또 그는 대행하므로 하나님의공심판에서 의롭게 하시고 대화친하므로 하나님과 화친의 새 생명을 영원히 이루셨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하고 완전한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의 구원을 단번에 얻어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딤후 3:15)으로서 하나님이 믿게 하신 은혜이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예정하신 때를 따라서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듭나게 하므로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중생으로 주신 믿음은 기본적이고 종자적이다. 다시 말하면 중생된 영이 믿는 믿음이다(롬 8:16, 23; 벧전 1:3, 21). 이후에 성령이 중생된 영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마음에 증거하므로 마음이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믿음을 출발하는 것은 심신이 믿는 건설믿음이다(요 3:8; 롬 8:10; 고전 12:3). 이 믿음은 점점 성장하여 가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갈 수 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진리와 영감을 믿음으로 사는 자는 사활대속을 옷과 같이 입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므로 영생한다. 이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주님의 계명을 지켜 주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님이 내주하시고 동거동행하여 주시므로 영생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사람의 영과 육은 하나님의 의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것이 이신득의이다(25, 26절).
27-28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1-26절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인간으로서 의롭게 되는 구원을 아무도 얻은 자가 없다. 따라서 인간은 아무것으로도 자랑하지 못한다. 아무리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할레를 받고 율법을 가져도 그것으로 자랑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자랑할 것이 없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전적 무지하고 무능해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을 나타낼 것이 없다. 무슨 법으로도 자랑할 것이 없고, 어떤 행위로도 자랑할 것이 없다. 인간은 타락으로 그 중심이 악하여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질되므로 법도 이용하고 행위도 가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는 칭의를 믿는 것으로만 의롭게 되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믿음이 없는 행위로도 의롭게 될 수 없고,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도 의롭게 될 수 없다. 진실한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오직 믿음의 법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지극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에 나아갈 수 있다(롬 1:16; 엡 1:21-23).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능력으로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자랑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그의 머리로 주권하고 인간은 그의 몸으로 순종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된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이다(계 3:1, 2). 믿음이 없는 행함은 인간이 주관하는 인본주의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는 것이 하나도 증거되지 못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율법의 완성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율법의 완성이다.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가진 의인이다. 의인이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기적과 복이 실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6).
29-30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한 분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면서 이방인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과 같이 또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할례자나 무할례자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자는 아무도 없다.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이 의롭게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진 자이다(딤후 1:9; 3:15).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중생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율법은 폐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율법을 완전하게 한다. 사람으로는 아무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이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인양성일위로 오시고 우리를 대표하고 우리를 위하여 사활로 대속하신 것을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열린 것이다. 사활로 대속한 하나님의 의를 믿도록 주님이 성령으로 말씀하여 주시는 진리를 듣고 믿어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역사해서 그 진리를 온전히 지키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입고 살게 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케 된다(마 5:17; 계 3:1-4).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의 사활대속을 온전히 입어야 하나님에게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새 사람 생활이다. 주님이 주시는 새 사람이 사는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 사랑이 되고, 예수님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고전 13장; 갈 5:22, 23).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은 전적 하나님의 능력이다. 따라서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그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오직 믿음으로 완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