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1-28 04:10
로마서 6장 강해
 글쓴이 :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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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 강해

제목: 성화의 근거와 권면
요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5)

1:1-17은 인사말, 복음의 기원과 능력과 효과, 1:18-3:20은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의 무지무능,3:21-5:21은 이신득의에 대한 구원 도리와 하나님과 화평, 그리고 대표와 연합의 진리,6-8장은 의인들의 성화에 대한 구원 도리를 말씀한다.
6:1-14은 롬 5:12-21의 대표와 연합의 진리에 근거하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한 옛 사람이 죽으면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한 새 사람이 살아서 성화가 건설된다. 또 이 성화를 위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한다.
6:15-23은 성도가 믿음 없이 마귀와 죄와 사망에 종이 되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고,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려 의의 종이 되면 성화가 건설되고 영생할 것을 말씀한다.

성화의 근거와 권면  6:1-14
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절의 말씀은 5장과 6장의 말씀의 연관성을 두고 말씀한다. 5장 12-21절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교리를 소개한다. 12절에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20절에서 율법이 가입하므로 범죄를 더하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계속 범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하면 기독교는 은혜로 말미암아 범죄를 더하게 하는 비도덕은 은혜에 대한 오해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은혜교리를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는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완전히 해방하고 자유하게 하는 사랑이며 은혜이다. 그러므로 지은 죄를 율법으로 깨달아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신분적으로 다시 죄를 범할 수 없고, 본성적으로 죄를 싫어하고 의를 좋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죄로 인하여 죽었던 우리가 의로 인하여 다시 산 자가 되었는데 어찌 죄 가운데 더 살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도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셨고,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2, 10, 11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죽은 영은 중생으로 단번에 영생하는 영으로 살았지만, 우리의 심신인 육은 대속 법으로 살았으나 아직 실제로는 죄 아래에 있다. 심신은 현실에서 믿음으로 살아날 수도 있고,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여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완전주의자들은 죄의 유혹과 협박에 무반응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죄가 죽을 몸에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한다.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드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에게 드려 의의 병기가 되도록 하라고 말씀한다(12, 13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로 중생해서 믿는 우리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계속 범할 수 없다.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죄를 범하지 아니하므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유혹과 세력에서 해방을 받았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 거하는 것이다.
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ϐαπτί󰐠ω)의 의미는 ‘물에 잠그다’는 의미와 ‘물로 씻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침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을 의미하고, 물로 씻는다는 의미의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해서 믿는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삶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정결하게 된 것을 믿는 신앙고백의 행위이다. 그리하여 믿는 우리는 옛 사람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범할 수 없다. 또 우리는 새 사람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로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하나님 영광의 보좌에 앉게 하시려고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역사이다. 그는 부활하심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몸과 지체로서 하나의 교회가 되었다(고전 12:27; 엡 1:22, 23). 그가 다시 살지 못했으면 그의 죽으심이 헛되고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 우리도 부활하지 못한다(고전 15:12-19). 그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영원한 보증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먼저 죽고 다음의 살아나는 사활의 도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우리 새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영생하게 된다.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성령과 피와 진리를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영은 중생으로 살아나고, 심신의 기능은 성화로 살아나고, 중생된 영은 그 만큼 능력있게 된다. 심신의 형체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로 신령하게 살아서 영생하게 된다(고전 15:40-54). 그러므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아서 자라가고 영생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은 성령과 피와 진리를 믿음으로 사는 새 사람 생활이다.
5-7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도 대속이고 그의 부활하심도 대속이다. 그의 죽으심의 사랑과 희생이 영원하고 그의 부활하심의 사랑과 희생이 영원하다. 그가 죽으실 때 그와 연합한 우리가 옛 사람이 되어 죽은 자가 되었고, 그가 부활하실 때 그와 함께 연합한 우리가 새 사람이 되어 산 자가 되었다(11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로 우리의 대속이 영원히 단번에 완전히 된 것이다(롬 4:25; 히 9:12). 그의 죽으심의 사랑과 희생이나 그의 부활하심의 사랑과 희생의 량이 똑같다. 그의 죽으심의 대속 공로는 대형의 사죄와 대행의 칭의와 대화친의 새 생명이다. 또 그의 부활하심의 대속 공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성령과 말씀을 믿음으로 영생하는 새 생명을 영원히 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의 대속을 부인하면 그의 죽으심의 대속이 헛되다. 우리가 알고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죄를 범하는 우리 옛 사람이 그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었고, 이제 우리 새 사람이 그의 부활하심에 영원히 연합되었다는 것이다. 옛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사는 사람이고, 새 사람은 성령과 피와 진리로 사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엡 4:22-24). 그 이유는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었고, 우리 새 사람이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알지 못하면 옛 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을 죽이고 부인하면 우리 새 사람이 그의 부활에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서 영생하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는 먼저 죽고 다음에 사는 사활의 도이다. 옛 사람 자기가 죽지 않으면 새 사람 자기가 살지 못한다.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다. 우리는 사죄의 은혜로 죄와 마귀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 옛 사람이 죽지 않으면 여전히 우리는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죄에게 종이 되지 아니하는 것은 옛 사람을 죽여야 새 사람이 되어 새 생명으로 살 수 있다. 우리 옛 사람이 부인되고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하는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다(롬 3:24).
8-9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는 것이 5절의 결과이면서 11절의 이유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는 것은 그와 함께 옛 사람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물세례는 한 번 받아도 성령세례는 계속 받아야 한다. 성령세례를 계속 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성령과 피와 진리’로 거듭나서 이 셋이 우리의 영생하는 새 생명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셋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므로 다 영생이다.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믿고 실제로 죽이면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새 사람이 살게 된다. 새 사람이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과 피와 진리를 믿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사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능동이 되고 우리는 주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믿음이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기 때문에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다시 죽지 아니함으로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고 영생한다. 새 사람으로 사는 그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고, 그에게 사용된 소유가 도적 당하지 않고 그의 인격이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된다. 그러나 우리 옛 사람이 죽지 않고 여전히 옛 사람이 사는 것은 육체대로 세상을 따라 사는 것이므로 사망 아래에 사는 것이다. 옛 사람으로 사는 자의 다시 죽는 사망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이다. 이 사망은 다시 속죄를 받는 길이 없다. 그때 심신의 기능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심신의 기능은 죄의 기능이 되므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하나가 된다.
10-11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 아니다. 자신은 죄가 없으시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후 5:21). 또 구약교회의 제사는 반복하여 드려졌지만(히 10:4) 예수께서 우리의 죄의 형벌로 죽으심은 단번에 영원히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죽으신 것이다(히 9:12). 그의 죽으심은 단번에 영원히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완전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공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또 그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은 우리를 위한 영원한 사랑과 희생으로서 단번에 영원히 대속한 완전대속이다(히 10:10-1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완전한 해방과 자유를 얻었고, 하나님의 지성지공법에 영원히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하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가진 자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구속을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의 사죄를 믿는 우리가 죄와 마귀와 사망에 대하여 완전 해방과 자유를 받은 자가 된 것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현실에서라도 죄를 범하는 우리 옛 사람을 죽이고 부인하여 벗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새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산 자로 사는 것은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영생하는 새 생명은 성령과 피와 진리이다. 믿는 우리가 사는 신앙행위는 어떤 형편에서라도 성령과 피와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어 사는 것이다.
12-14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중생해서 믿는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영원히 산 자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산 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진리의 은혜 아래에 있으므로 이 은혜를 받은 자로 믿고 살면 율법에서 자유하게 된다(약 1:25).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므로 죄가 우리 몸에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마귀는 우리 몸의 사욕을 따라 죄를 범하게 하고 죄의 종이 되게 한다(벧전 5:8). 우리의 심신은 죄로 죽은 것이지만(창 2:17; 3:19)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산 심신이 되었다(롬 6:11; 고전 6:19, 20). 대속법적으로는 이미 살았지만 실제로 심신이 믿음으로 살아야 영생하는 심신의 기능으로 성화가 되지 믿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심신의 기능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죽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죄로 죽을 몸을 믿음으로 살려야 한다. 우리 몸의 정과 욕심도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죽이고 부인하지 못하면 믿음에서 떠나 행하게 된다(갈 5:24). 죄를 범하는 우리 옛 사람이 부인되고 죽으면(롬 8:13; 엡 4:22-24; 6:12; ; 빌 4:13; 히 12:4) 우리가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으로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복을 받는다. 믿는 우리가 심신을 죄에게 드리면 죄를 범하는 불의의 병기가 되고, 우리의 심신을 하나님에게 드려서 믿음으로 순종하면 의를 행하는 의의 병기가 된다. 우리가 심신을 죄에게 드려 불의의 병기가 되면 죄의 기능이 마련되므로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성장하여 옛 사람이 강하게 된다. 또 우리가 심신을 하나님에게 드려 믿음으로 순종하면 심신은 의의 병기가 되고 성령과 피와 진리로 사는 새 사람이 성장하고 능력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성령과 피와 진리의 은혜로 충만해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할 수 있다(엡 4:13).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6:15-23 
15-16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러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4절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자들의 요구하는 문제에 바른 해석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범해도 지은 죄를 용서 받고 정죄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 1절에서는 은혜를 더 많게 하려고 죄를 범하는 것은 배은하는 행위가 되고, 15절에서는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범해도 사죄를 받으니 하는 것은 무시하는 행위가 되므로 다 어리석은 육체대로의 생각이다(유 1:4).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더 죄를 범할 수 없다. 믿는 우리는 죄의 종이 되든지 아니면 의의 종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로 살게 된다. 이 종은 청지기가 아니고 주인에게 복종해야 하는 노예와 같은 자이다. 율법 아래에 있을 때는 연약한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완전한 율법을 범하는 죄의 종이 되지 않을 수 없다(요 8:34). 아무리 율법을 지키는 의인이라도 하나의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 되고 만다. 죄의 종이 되면 중생해서 믿는 사람이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으므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된다(마 25:41-46; 계 2:11; 20:12-15; 21:8). 더욱이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 아래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사는 것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말씀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아서 영생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범할 수 없다. 죄를 범하는 심신의 기능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때 우리는 그 죄를 피에 고하여 회개하고 죄 없는 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믿음으로 살아야 우리는 의의 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죄에 드리면 죄의 종이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되고,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리면 의의 종이 되어 심신의 기능이 성화되고 영생하게 된다. 그때 사용된 만물도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영원히 사용되는 소유가 된다. 그러므로 평생에 한 번뿐이 현실을 죄의 종으로 사느냐? 아니면 의의 종으로 사느냐? 이런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죄를 범하고 죄의 종이 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으로 영원한 사죄의 은혜를 받아서 죄가 없는 자가 되었으니 다시는 죄에 거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 육신이 연약하여 죄를 범할지라도 얼른 회개를 하고 사죄의 은혜 아래에 있어야 성령과 피와 진리의 은혜로 영생에 이를 수 있다. 성령과 피와 진리를 우리가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는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17-19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16절에까지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관하여 말씀하다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말씀하는 그 이유는 17절과 18절에서 말씀한다. 로마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해서 성화의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감사를 한 것이다. 성화는 성도가 성령과 피와 진리를 깨달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 “너희”는 로마서를 복음으로 받아 믿는 모든 사람들이다. 아담의 자손으로서 모든 사람은 원죄와 본죄로 죄의 종이 되었다. 아담의 자손으로서 의인은 하나도 없다. 빈부, 귀천, 노소의 분별이 없이 다 죄와 사망 아래에 있다(롬 3:10-12). 그때 로마교회 성도들이 받은 교훈은 무엇인가? 바울은 아직 로마에 가지 않고 처음으로 보내는 편지이므로 이미 전도자들로 하여금 받은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진리일 것이다. 그 근본이 되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에서 벗어나 의인이 되는 진리이다. 이 복음을 받아서 믿는 자는 누구든지 전에는 죄의 종이지만 거기서 해방을 받아 의의 종이 되어 자유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과 피와 진리를 깨닫고 믿는 자는 진리로 자유하고, 성령으로 자유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자유하는 자가 된다. 우리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다. 그것은 중생해서 믿는 우리의 심신에 악성과 악습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악성은 원죄로 말미암은 부패성이다. 이 부패성으로 여러 번 산 것이 악습 곧 본죄이다. 죄의 형벌은 대형으로 사죄 받았지만 그 죄로 인한 오염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심신을 유혹하면 쉽게 미혹을 받아 넘어진다(롬 3:5; 갈 3:15). 이 사람이 옛 사람이다. 전에 범죄하던 사람이 자기의 심신을 부정과 불법에 드리면 불법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대속과 중생으로 믿는 우리들이 우리의 심신을 의에게 종으로 드리면 부정과 불법에 이르지 않고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심신을 죄에게 드리면 죄의 종이 되고, 의에게 드리면 의의 종이 된다. 의의 종이 되면 거룩함으로 성화에 이르게 된다.
20-21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믿는 우리가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되었을 때는 의와는 거리 멀리 하고 자기 심신이 좋아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자유하는 줄 알지마는 실은 죄에게 종이 된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의 종이 되어 산 그 열매를 보면 죄에 종이 된 사실을 깨달아 알 수 있다. 죄의 결과는 사망(마 3:12; 계 20:13, 14)이므로 사망의 열매를 맺을 때는 죄의 종이 된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하게 된다. 이러한 수치를 당하기 전에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심신을 죄에게 드리지 말고 하나님에게 드려야 한다.
22-2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종으로 살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으로 죄의 사죄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영원히 해방과 자유를 이미 받았다. 또 그의 대행으로 칭의를 받아서 하나님에게 드려진 의의 종이 되었다. 또 그의 대화친으로 거룩함의 열매를 얻은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이 된 것이다. 또 그의 부활에 연합한 새 사람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공로를 받은 자로 영원히 사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중생해서 믿는 사람들은 영생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러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사망은 영원한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과 진리이다. 이 셋은 하나이다. 이것은 믿는 우리에게 생명이며 영생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제 믿는 우리는 우리가 죄에게 종이 되면 우리 심신의 기능이 죄의 기능이 되므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드려 의의 종이 되면 우리 심신의 기능이 의의 기능이 되므로 성화되고 영생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는 깨어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믿음으로 순종해서 의를 행하고 그리스도 예수에게까지 자라가도록 힘써야 한다. 6장에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도가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으므로 죄에서 해방되고 의의 종이 되어 성화의 구원을 건설하고 성장해 나가야 할 것을 말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