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5 09:33
로마서 12장 강해
 글쓴이 :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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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 강해

제목: 성도의 기본적인 신앙행위
요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1-8장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얻는 구원 도리를 말씀하고, 9-1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스라엘이 거부하므로 이방인이 구원을 얻는 것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한다. 12:1-15:13은 은혜로 구원을 얻은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15:14-16:27은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과 본서를 마무리하는 말씀을 기록한다.
1-2절에서, 성도의 기본적인 삶은 하나님 앞에 영적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3-5절에서,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교회가 된 것을 믿어야 한다.
6-8절에서, 하나의 교회 안에 다른 지체로서 각자는 자기의 직분에 다해야 한다.
9-13절에서, 성도는 형제에 대한 사랑과 주님에 대한 경건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
1-13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에 대한 윤리이며, 14-21절은 사회에 대한 윤리이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행하고 서로 화평을 이루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에게 대한 성도의 기본적인 신앙행위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하는 말씀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교리에 대한 말씀을 하고 이제 그 교리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실제적인 면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씀한다. 그래서 9-11장보다 1-11장의 교리에 대한 신앙행위(12장-15:13)를 말씀하려고 하는 것이다. 1-2절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신앙행위의 서론에 해당한다. 로마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형제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므로 형제들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신약시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된다. 12:1-15:13은 신약시대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신앙행위를 권면한다. 하나님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겨서 구원으로 역사하시는 섭리에 따라서 순종하는 신앙행위를 권면한다. 구원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택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정하신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가운데 사활로 대속하시고 중생과 성화와 부활로 영화되게 하신다(롬 8:3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구원으로 섭리하시는 역사를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있는가? 없다. 그 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 자가 되었으므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너희 몸”은 영과 대조되는 육신을 말하지 않고, 마음과 대조되는 몸도 아니다. 여기 “몸”은 소마의 복수형으로서 영과 육을 가진 사람(전인)을 두고 말씀한다.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이며(고전 6:15), 성령의 전(고전 3:16)이므로 하나의 인격체이다(창 2:7, 21-23). 구약시대는 동물의 피로 구속 받도록 계약되었지만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구속받은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죽어야 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성도는 죽지 않고 그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고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산자가 되었다(롬 6:1-11).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에게 바쳐진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자신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예배를 드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받으시고 주관하시도록 하는 것이 산 제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으로 구원받은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므로 이제 짐승의 피는 필요 없다. 성도는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해방과 자유를 받은 자이고, 의로운 자이고, 하나님과 화친된 새 생명을 가진 자이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성령의 감동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예배를 드려야 한다(벧전 2:5). 우리의 심신을 성령과 피와 진리와 중생된 영과 함께 산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것이 우리가 드리는 “영적 예배이다. 그러면 우리의 중생된 영과 심신은 신령한 전이 지어지고, 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성령과 피와 진리로 역사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성도는 이 세상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 세상을 따라가면 주를 배반하는 것이 되므로 그만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되어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따라 옛 사람이 되어 살게 된다. 성도는 산 제물이 되어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첫째로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을 가지고 보이는 이 세상을 조심하고 경계하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생활에 이용해야 한다. 성도는 이 세상을 따라 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귀는 성도들의 정욕을 따라 이 세상을 따라 가도록 항상 미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도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몸은 마음을 떠나서 행동할 수 없으나 마음은 의지의 자유로 중생된 영과 성령과 진리를 따라 행할 수도 있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따라 행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먼저 몸을 산 제사로 드리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심신이 변화를 받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서 믿는 성도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말씀과 성령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딤전 4:5). 그러면 성도는 성령과 피와 진리로 충만하게 되고(요일 5:8)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을 진리로 밝히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행하여 사랑하시는 주 안에 거할 수 있다(요 14:6; 요일 2:27). 이 세상에서 성도가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 이 세상 성도의 현실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는 때가 없다. 그 뜻은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정하신 때를 따라 성도들의 현실을 창조하시고 그 현실로 성도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믿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선하다. 선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중심이지 피조물 중심이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의 뜻은 또한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므로 평안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온전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현실에서라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믿고 행하는 것이 성도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되고 영원한 자기의 처소를 마련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먼저 하나님에게 대하여 신령한 예배를 드리고, 다음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심령이 새롭게 변화를 받으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믿음으로 행하게 된다. 이러한 성도는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이 세상 사회에서 빛이 되므로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종이 되고 하나님에게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교회에 대한 성도의 신앙행위 12:3-13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은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대로 말한다(롬 11:13). 거듭나서 믿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아 구속 받은 것을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에게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에게 자신을 드려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믿고 행해야 한다. 바울도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사도의 직분을 받아 성령과 피와 진리를 따라 믿음으로 전하는 말은 사람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며 요구이고 명령이다. 사도 바울이 “너희 중 각 사람에게” 전하는 상대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과 지체로서 만물 안에 또 만물 위에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단번에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요 2:21)는 단일교회이다.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교회이므로 단일교회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들로 하여금 세워진 터 위에 교회가 건설되도록 해야 한다(엡 2:20).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생각은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성도는 각자가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자기의 분수를 넘지 말아야 한다(엡 4:7; 빌 2:3). 바울은 로마교회에 아직 가서 본적이 없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하여 교회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16:3, 4). 하나님의 교회에는 모든 사람 즉 각인의 믿음에 따라 받은 은사가 있다. 그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영감과 진리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또 각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령이 각각 믿음의 분량대로 감동하시고 진리대로 생각하게 하신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영감과 진리로 가르치시는 말씀을 생각으로 깨닫고 신앙양심으로 믿고 다하여 성도들은 행동해야 한다. 육체의 생각은 썩어진 것을 거두나 성령의 생각은 영생을 거둔다(롬 8:6; 갈 6:8). 성령의 생각은 성경의 진리대로 진리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므로 참되고 거짓이 없다(갈 5:요일 2:27).
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 한 사람의 몸에 많은 지체가 있다. 눈은 온 몸을 위하고 눈만 위하지 않는다. 그래서 눈은 온 몸에 필요하다. 혀는 혀만을 위하지 않고 온 몸을 위하므로 온 몸에 필요한 혀이다. 눈이나 혀가 없으면 온 몸이 불편하다. 또 한 몸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지지 아니했다. 각각 다른 직분을 가졌다. 눈은 눈의 직분을, 혀는 혀의 직분을, 귀는 귀의 직분을 가졌다. 이제 우리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교회가 되고 또 각각 믿음의 분량대로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전 10:17; 12:27).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단일교회이며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기적 연합의 지체로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엡 1:22, 23; 4:15, 16; 골 1:18).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은 각각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자기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집사는 집사의 직분을 목사는 목사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집사가 목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고, 목사가 집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 목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인 교회를 건설해야하고, 집사도 한 몸인 교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인 단일교회에 들어가야 한다.
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믿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서 공으로 주신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이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에게는 누구든지 똑같다. 그러나 받은 은사는 각각 다르다. 그것은 각각 자기의 믿음의 분량대로 받는 직분은 받은 능력의 차이이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도 하나이지만 각각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 은사의 차이는 자기의 믿음 차이이다(고전 12:4-11). 6-8절에 계시된 7가지 은사 외에 다른 은사들도 있을 수 있다.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예언은 교회 안에서 사도 다음의 위치를 가진다(고전 12:28).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 말씀이다. 예언은 미래를 예언하는 정도가 아니고 사람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비밀이다. 하나님의 위로, 명령, 교훈, 요구, 권면, 판단 등을 포함한다(고전 14:3, 31). 예언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와 관계되므로 교회의 직분에서 우위의 위치를 가진다(고전 12:29; 엡 4:11). 하나님의 말씀은 대언하는 자는 자신의 믿음 분수대로 해야 한다. 그것은 반사가 자기 반 학생에게, 구역장은 자기의 믿음 식구에게, 목사는 자기 교회 성도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섬기는 일은 교회의 집사직을 두고 말씀하는 것 같다. 사도직 외에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서 성도를 섬기는 일은 다양하다. 섬기는 일은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의 봉사로서 교회에 음식을 준비하는 일(눅 10:40), 말씀을 전하는 일(행 6:4), 화목하게 하는 일(고후 5:18), 연보 관리하는 일 등이다. 이 섬기는 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주님의 몸을 섬기는 일로 해야 한다. 반사가 학생을 섬겨도 주님을 믿음으로 섬겨야 하고, 목사가 성도를 섬겨도 주님을 믿음으로 섬겨 주님에게 충성이 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가르치는 자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자이다. 가르치는 일은 교회에 머리가 되신 주님이 성령이 감동하여 성경의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고 믿음으로 그 진리를 가르쳐 전달하므로 주님을 믿어 영감과 진리대로 하나의 교회가 되게 하시는 직분이다.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권위는 예언하는 일과는 구별이 되고 가르치는 일과는 비슷하나 구별이 된다. 성경의 바른 구원 도리대로 적용하고 생활하도록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이 권위이다. 권위하는 자는 권위하는 일에 충성해야 하지 다른 일에 참견하면 안 된다. 권위하는 자는 사랑하는 형제에게 깊은 사랑을 가지고 위로하고 바른 진리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강제하거나  명령할 수는 없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구제하는 일은 섬기는 일과 비슷하나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도와 줄 때 성실해야 한다. 성심과 성의가 필요하다. 형제를 멸시하거나 천히 여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도록 구제해야 하지 육적으로 구제하고 영적으로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면 헛일이 된다. 구제는 인색하지 말고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후 8:2; 9:11, 13; 엡 6:5).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교회에서 은사교권을 가진 자는 기본교권을 가진 자에게 사랑과 희생이 있어서 바른 교리와 신조대로 하나님 한 분에게 복종이 되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직분이다. 잠시만 마음을 다른 데 두어도 중심에서 삐뚤어지고 바른 노선에서 이탈하기 쉽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한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물질적 구제가 아니고 어려운 형편에 처한 형제를 사랑하고 위로하므로 소망과 기쁨과 믿음을 주는 자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아서 그의 몸과 지체로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9-13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위의 7가지 은사를 감당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이 없으면 거짓과 외식이 된다. 이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고 예수님의 사랑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그의 몸은 교회이므로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피차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은 진리대로 사랑이므로 거짓이 없다. 진리대로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것이 되므로 속이고 꾀우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또 그리스도를 사랑하므로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한다. 악은 피조물 중심이고 선은 하나님 중심이다. 사랑에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선이다.
또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보다 형제를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며 존경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빌 2:3). 자기를 먼저 사랑하거나 우애하거나 높이면 악이 되고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게 된다.
또 성도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한다(마 25:23, 26). 주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일에 게으르면 자기를 사랑하는 악이 되고 부지런하면 선이 된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열심을 마음에 품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섬기는 일에 다하여 충성해야 한다. 그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전지전능 하시며 천지의 대주제가 되시고 심판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또 거듭나서 주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가졌다(고전 13:13; 골 3:1-4; 벧전 1:3, 21). 주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과 믿음과 사랑을 가진 성도는 받은 구원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찬송하므로 자기를 말씀과 성령으로 깨끗하게 해야 한다(엡 1:6, 12, 14; 요일 3:3). 우리가 주님의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되는 그 날을 소망하면 누가 즐거워 찬송하지 않겠는가(계 3:21)?
또 성도의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은 전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이 구원을 얻는 방편은 오직 믿음이다(롬 1:16, 17). 이미 받은 구원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우리의 신앙행위는 다해야 한다(눅 10:27; 계 2:10). 여기에는 성도가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환란과 핍박과 곤고가 있다. 이러한 어려움이 없는 현실이 없는 때가 없다. 왜 그러가? 그것은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아무도 아무 것도 성도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9). 이것을 알고 환란 중에도 믿음을 인내하고 계속해야 한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께서 책임을 지고 승리하게 하여 주신다(계 3:3-6).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오는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항상 기도하므로 신인교제를 계속해야 하고 성도들의 필요한 것을 공급(롬 15:26; 고후 9:13)하며 손 대접하기(신 10:18, 19; 마 25:35)를 힘써야 한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응답이 있다(계 8:3-5). 믿음으로 환란 중에 있는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찾아오는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접하고 섬기는 신앙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섬기는 신앙행위는 한 몸인 교회를 섬기는 것이므로 자기를 위하는 결과가 된다. 먼저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의 교회를 건설해야 교회 밖에 사회에 빛과 소금의 직책을 감당할 수 있다.

사회에 대한 성도의 신앙행위 12:14-21
주님의 교회에서 성도의 믿음 분량대로 은사를 받아 감당할 때 한 몸인 성도를 먼저 섬기고 돌아봐야 하고 다음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사회에 대하여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것은 교회는 본분이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14-16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이면서 한 몸인 교회이다(롬 12:4, 5; 고전 3:16).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어서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이 되어있다(요일 5:19). 주님의 교회는 교회에 대하여 세상이 대적해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죄와 마귀와 사망은 대적해도 그 종이 되어있는 사람은 사랑하고 구원하려고 저주하지 말고 스데반과 같이 축복해야 한다. 교회를 핍박한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얻었고, 또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 연합이 되었기 때문이다(레 19:18; 막 12:31; 고전 4:12, 13). 주님과 교회를 핍박하는 그 사람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이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중생으로 구원을 얻는 때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축복해야 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축복하지 않고 저주를 하면 그 저주가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자신이 원동에 피동되어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죄를 범할 수 있다.
또 주님의 교회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 한다. 사람은 이웃에 대하여 내 몸과 같이 피차 사랑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믿지 아니하는 자는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몸인 하나의 교회를 건설해야 한다(마 5:16; 벧전 3:1). 교회는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슬퍼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랑이 서로 사랑이 되기까지 희생해야 한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이면 예정된 때를 따라 믿음으로 한 몸인 교회가 건설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또 성도는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해야 한다. 성도는 이웃에 대하여 사랑하므로 서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자신은 이웃의 단점보다 장점을 찾아서 이웃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 이웃의 장점보다 단점을 찾아 지적하면 마음을 높이므로 교만하게 되고 이웃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을 머리로 모셨으면 다음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가지는 것은 만물을 얻는 것보다 더 크고 중하다.
또 성도는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아야 한다. 지혜의 근본은 오직 하나님이시다(시 111:10). 피조물인 사람의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지혜로 살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지식이며 하나님의 지혜이다. 성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따라서 믿음으로 순종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망령이다.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믿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한 몸인 교회를 건설하므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고 만물에게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므로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리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16-18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대속과 중생으로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종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을 수 없다. 하나님 중심위주가 아닌 것은 다 악이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피조물 중심이나 자기중심은 전부 악하다. 인류 중심도 악하고, 나라 중심도 악하고, 도덕 중심도 악하다. 악을 악으로 상대하면 서로 죄를 범하고 망하게 된다. 모든 죄는 악에서 나오고, 죄를 범하면 죽고 망하게 된다. 성도는 언제나 중심과 위주가 선해야 한다.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선하다. 모든 사람이나 만물 앞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에게 찬송과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한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살고 행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한다. 선한 일은 하나님 중심위주의 일이다. 하나님은 홀로 주권자시며 주재자시다. 하나님이 주권으로 주재하시는 역사에 역행하는 것은 모두 멸망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이 되어야 살고 복이 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가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의 뜻을 따라 명령대로 믿고 순종하도록 모든 사람 앞에서 세상의 빛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사활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화목하게 하는 제물이 되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취해야 한다. 선한 일을 하면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에게 진노를 일으키는 일이 된다. 모든 사람도 선한 일을 하게 하므로 평화를 가질 수 있지 누구라도 선한 일을 하지 아니하면 악한 일을 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평안을 누리도록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성도는 거룩하므로 화평해야 하고, 화평하므로 거룩해야 한다. 선한 것은 거룩과 화평을 모두 가진다.
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하는 것(고전 10:14; 빌 2:12)은 1절의 “형제들아” 하시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 보다 더 친근한 감을 가진다. 로마교회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씀이지만 신약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서로 사랑하는 형제이므로 미워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 주님의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사랑하므로 관용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려면 교회를 핍박하는 원수에 대하여도 사랑하므로 관용해야 한다. 교회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가 언제 회개하고 믿는 형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에게 주권 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불의한 것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신명기 32장 35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기 때문에 악에 대해서는 선하신 하나님이 갚으신다(마 12:18; 요 5:30; 9:39; 히 9:27).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므로 원수라도 주리면 먹이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도록 협력해야 한다(잠 25:21, 22).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대형해서 사죄하여 주신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가 형제에 대하여 사랑하여 관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성도의 친절한 신앙행위로 원수가 그의 죄를 회개하게 하는 심적 변화를 일으키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이것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악으로 패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된다.